※아파트 자료

엘리베이터가 무서워

한기종 2008. 4. 2. 09:44

엘리베이터가 무서워

기사입력 2008-04-02 03:34


"어린이·여성 노린 범인들, 밀폐된 공간서 더 대담"

비용 아끼려 경비원 줄인 것도 범죄 증가에 한몫


최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에 신고되지 않은 사건도 많아 아파트 주민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20대 남성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가 중인 여고생 A(17)양의 신체부위를 촬영하다 이를 저지하는 경비원 조모(64)씨의 손을 칼로 찔렀다.

지난달 10일 오후 2시쯤 인천시 부평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여자 초등학생 B양이 10대 고등학생 두 명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고등학생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B양의 입을 막고 온몸을 만진 후 엘리베이터를 세우고 도주했다.

지난해 6월 울산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여·22)씨는 밤늦은 시각 낯선 남성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김씨가 6층을 누르자 이 남성은 4층을 누르고 해당 층에서 내려 안심을 했지만 남성은 계단으로 미리 올라와 숨어있다가 흉기로 김씨를 위협한 후 집에 들어가 강도짓을 했다.

◆폐쇄적이고 단절된 공간

범죄 전문가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범인들은 심리적으로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데다 공간 자체가 좁고 폐쇄돼 있어 피해자가 도망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조병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연구센터장은 "엘리베이터 안은 범죄가 일어나도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단절된 공간이고 목격자도 없어 범행에 자주 이용된다"고 말했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범인들은 폐쇄된 공간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공격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범행을 저지르는 심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경찰서 김제만 경위는 "(엘리베이터는) 밀폐된 공간의 특성상 피해자가 비명을 질러도 밖으로 들리지 않는다"며 "다만 언제든 다른 사람이 탈 수 있기 때문에 성추행과 같은 순간적인 범행이 자주 벌어진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CCTV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인들은 엘리베이터에 범행대상과 단둘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자신이 CCTV에 의해 감시받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건축법상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할 필요는 없어, 주민들이 따로 관리비를 내 아파트 엘리베이터마다 CCTV를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엔 아예 CCTV를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가 돼 있어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인천 부평경찰서 고영민 수사관은 "오래된 아파트의 구형 CCTV들은 테이프로 녹화되다 보니 일주일 이상 지나면 녹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수사를 위해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CCTV화면을 보여달라고 요구해도 (경비원들이) 조작법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설사 CCTV가 설치돼 있다 하더라도 범인이 모자를 쓰고 있을 경우엔 얼굴이 노출되지 않는다. 이번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의 경우에도 범인의 얼굴은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CCTV에는 잡히지 않았다.

아파트 경비가 자동경비시스템으로 바뀌고 경비원 수가 줄어든 점도 범죄를 부르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 강북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출입카드 인증시스템이 있더라도 범행대상을 바로 뒤따라 들어간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 며 "중국집이나 치킨집 배달원들은 출입문 비밀번호를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2007년 초 전국적으로 19만2000명이던 아파트 경비원들은 1년이 지난 올해 4월 현재 약 14만7000명으로 줄었다. 지난해부터 최저임금법이 아파트 경비원에까지 적용돼 임금 부담을 느낀 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 대신 자동경비시스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관마다 경비원을 두고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범죄예방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와 함께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치안의 사각지대로 손꼽힌다. 어둡고 인적이 드문데다 도피하기도 쉽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엔 지하주차장에 CCTV가 없는 곳이 많고 있더라도 귀퉁이나 기둥 뒤 '사각지대'가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엘리베이터 범죄를 피하려면

전문가들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낯선 사람과 타는 것은 아예 피하는 것이 좋다. 범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범죄대상을 뒤따라 타는 경우가 많아 그럴 때 과감하게 내려 범죄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만약 낯선 사람과 함께 탔다면 엘리베이터 버튼이 있는 곳 바로 앞에 서거나 낯선 사람의 뒤에 서 있는 것이 안전하다. 또 일단 상대방이 층 버튼을 먼저 누르는 것을 보고 나서 버튼을 누르는 것이 좋다.

만약 같이 탄 사람으로부터 범죄의 낌새를 눈치챘다면 중간 단계의 층을 눌러 범죄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유사시엔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비상버튼을 눌러야 한다. 하지만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범인이 흉기로 위협하거나 폭행을 가할 경우엔, 엘리베이터 안에선 최대한 순응해야 우발적인 범행을 막을 수 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어린이의 경우엔 호루라기나 비상벨을 휴대하는 것이 좋다. 그냥 비명을 지를 경우엔 엘리베이터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여성들은 핸드백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소형 가스총이나 전자충격기, 호신용 스프레이를 휴대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