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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아파트부녀회 임원이 된 뒤 주민들의 친목도모와 부녀회 활성화를 위해 농원 견학을 다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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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애 |
|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무엇이 진정한 삶의 가치인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간다. 잠시만 정신을 팔아도 저만치 뒤처지는 기분이다.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요즘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무보수로
아파트 일을 하고 있는 부녀회원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
"부녀회 활동은 아파트 주민의 의무"
최근
아파트 가격 담합, 수익사업 치중 등 일부 부녀회의 궤도이탈로 부녀회 활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부녀회 활동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실제 깊숙이 관여해 본 부녀회 회원들은 누구보다 고장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고 강한 봉사정신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난 2002년부터 아파트 부녀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부녀회 활동에 대해 잘 몰랐을 때 부녀회는 '비교적
시간이 얽매여 있지 않은 전업 주부들로 구성되어 일을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짧은 생각은 빗나갔다. 전에 내가 살았던 아파트
부녀회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차기 부녀회장을 뽑아야 하는데 모두가 제 살기에 바쁘다며 동네 일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 아파트에 살면 동네 일에 관심 갖는 것은 의무다. 한가해서 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없는 시간 쪼개서 했다. 그러니 아파트 주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일하는 주부이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아파트 부녀회 총무 일을 맡게 되었다. 다행히 부녀회장은 나와 같은
독서지도사 일을 하고 있어 우리는 여러모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먼저 분리수거대를 제작해서 그동안 불편했던 분리수거 방법을 바꾸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녀회 사무실 공간을 활용해 독서실을 만들어 도서를 비치했다. 독서왕 선발,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어린이 백일장
등을 열었다. 또 지역사회협의회에 의뢰해 부모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방학이면 부녀회장과 나의 직업을 살려 독서ㆍ글쓰기 지도 방학
특강을 열었다. 방학특강에 모인 학생들을 주축으로 어린이 기자단을 만들어 아파트 소식지('징검다리')도 펴냈다. 내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소중한 인연을 소식지를 통해서라도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계간지로 나왔던 이 소식지를 통해 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검토해 볼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을 얻었다. 그때
활동했던 어린이 기자들은 학교 기자단, 어린이 신문 기자단 등으로 영역을 넓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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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회가 나서 아파트 단지 안에 만든 빗물 재활용 생태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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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애 |
| 잘해야 본전, 못하면 한소리 들어야
2년
동안 부녀회 일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도 내
일처럼 다가오게 되었다. 그런 애정이 습관으로 굳혀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구든 한 번씩은 꼭 부녀회 조직에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2004년 말 나는 지금의 백송마을 동남아파트(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2동)로 이사했다. 당시 우리 아파트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라서 동대표회의나 부녀회 등 조직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2005년 5월 제1기 부녀회가 만료됨에 따라 2기 부녀회원 모집
공고가 났다. 이 아파트 역시 전에 살던 아파트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누구든 선뜻 나서질 않았다. 부녀회는 무보수 봉사직이란 한계도 있지만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빗발치는 주민의 소리가 두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 어차피 우리 아파트를 위한 일은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9명이 뭉쳤다. 임원이 구성되었다. 나는 부회장을 맡았다. 부녀회장을 맡은 한근희씨는 그동안 회장 활동비 명목으로
나가던 약간의 경비조차 반납하고 순수한 봉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아파트 주민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가꾼다는 마음으로 임기 1년 동안 잘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생태 연못, 태극기 달기로 주민 한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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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상2동 백송마을 동남아파트 부녀회는 지난해 8월 광복절 당시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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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애 | 지난 1년을 회고해 보면 입주자대표회의와
함께 빗물을 재활용한 생태 연못을 조성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푸른경기21'이 주최하고 평생교육실천협의회가 주관한 이 연못을 경기도에서는
최초로 우리 아파트에 유치한 것이다.
이 연못은 도시화로 훼손되거나 사라진 자연습지를 대신해 다양한 종들이 서식할 수 있도록
조성한 인공습지다. 우리 아파트 학생들과 함께 식물 채취부터 식재 작업을 했다. 지금 이 연못은 주민들의 쉼터로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경일과 기념일에 실시했던 태극기 달기 캠페인은 단순한 태극기 달기 행사를 넘어 애국하는 마음과 주민의 화합된 모습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동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저렴한 가격으로 태극기도 공급했다. 태극기 주문이 빗발치는 모습을 보며 건설적인 일을 유도하면 주민들의
힘은 모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 부녀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은 부천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있는 '찾아가는 열린음악회' 개최,
부천시정 현장견학 실시, 중앙일간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기자 지식 경험나눔봉사' 강의 신청 등이다.
"부녀회 활동, 품앗이
개념으로 자리잡았으면..."
우리 아파트에서 지난 1년간 부녀회장을 맡았던 한근희씨는 최근 일부 부녀회의 아파트가격 담합에
대해 "중동신도시의 집값 올리기는 담합이 아닌 제값 찾기"라며 "분양 당시에는 중동보다 분양가가 낮았던 수도권 신도시들의 현재 아파트 가격은
높게 측정되어 있다. 이렇게 평가절하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좋은 건 아니다. 금리가 인상되면 대출금 압박에 국가경쟁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높아지는 재산세에다 보유세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영숙 부녀회 총무는 "부녀회 활동은 품앗이 개념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주민이면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누구든
생업에 바쁜 것은 마찬가지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동네 일을 하다 보면 주민간의 어쭙잖은 오해도 풀리고 정주의식도 생긴다"고 지난 1년을
돌아봤다.
나는 부녀회가 지역사회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국가적 인프라라고 생각한다. 주민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역사회와의 연결통로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직업군들이 참여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현장감을 서로
공유한다면 공익에 기여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부녀회는 부녀회의 본래 기능인 자치적인 봉사모임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한편 우리 아파트 부녀회 구성원은 임기 1년이 만료됨에 따라 차기 부녀회 임원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 부녀회가 특정
주부들의 참여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면 누구나 한번쯤 주인의식을 갖고 봉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말해 주더라도 잊어버리고,
보여주더라도 기억하기 어렵지만 참여하게 해 준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부녀회는 주민들의 참여 속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단체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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