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자료

<만세대> 25년 삶터 이젠 추억이 된다

한기종 2008. 2. 17. 21:59
포커스]<만세대> 25년 삶터 이젠 추억이 된다

일산아파트 떠나는 사람들

 

[2008.02.15 22:02]

15일 철거작업이 한창인 울산시 동구 전하동 일산아파트 철거현장을 찾은 정수자(왼쪽), 황영모(가운데), 이종회씨가 이웃간 정겹게 지냈던 당시를 회상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1980~90년대 울산 동구하면 떠오르던 것 중의 하나가 '만세대'로 불리던 일산아파트였다. 실제 만세대는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만세대라는 별칭은 굳어져 오히려 일산아파트는 몰라도 만세대 아파트라면 알 정도였다. 현대중공업 근로자와 서민층의 대표적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해 온 일산아파트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일산아파트는 지난달 초 이주가 완료된 3지구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가 상반기 중으로 1지구, 이어 하반기에는 2지구 등 연말까지는 전체 단지 모두의 철거가 완료될 예정이다.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아파트도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

15일 낮 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울산시 동구 전하동 일산아파트 재건축사업 현장을 찾아 이 아파트와 희노애락을 같이 해 온 3명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철거를 앞 둔 소회와 그들만의 추억과 애환을 들어봤다.




#'현대왕국'의 상징적 아파트

일산아파트는 1970년대 초에 들어선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의 보금자리로 80년대 초반까지 모두 3400여 가구가 건립된 울산 동구지역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실제 1만 가구에 이르지는 않지만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원들에게 1만 세대의 아파트를 지어주겠다"고 한 뜻을 반영해 '만세대 아파트'로 불렸다. 지금까지 이 곳을 거쳐간 가구 수만 하더라도 2만 가구 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될 만큼 동구의 상징적인 아파트 단지다.

3지구 재건축조합장 황영모(56)씨는"아파트가 막 건립된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입주민들이 현대중공업 근로자들로 사실상 사원주택 같은 개념이었다"며 "더욱이 현대중공업에서도 근속연수나 근무성적이 좋아야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85년부터 지난해까지 햇수로 23년간 거주했던 이종회(51·회사원)씨는 "회사 융자로 20평짜리 아파트를 550만원에 사서 들어왔는데 그 당시 동구지역에서 그 정도 가격의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것도 경쟁이 치열해 이사 온 첫날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89년부터 작년까지 19년간 살았던 정수자(여·51·주부)씨는 "내가 들어갔을 때는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상태로 17평짜리를 1600만원에 그것도 아는 사람을 통해 2년에 걸쳐 할부로 주고 구입했다"며 "10평짜리 작은 집에 살다가 이 아파트에 이사왔을 때 느낌은 마치 대궐같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서민들의 情이 넘쳤던 곳

"정말 정이 넘쳤지요. 아마 이제는 그러한 풍경은 보기 힘들 것입니다." 130동의 동 대표를 역임했던 이씨는 일산아파트 하면 입주민간의 '정(情)'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이씨는 "우리가 살았을 때는 한 달에 한 차례 씩 같은 동 전 주민이 아파트 마당에 모여 막걸리에 각자 싸온 음식을 나눠 먹는 등 마치 시골 이웃집같이 정겹게 지냈다"며 "또 같은 라인끼리는 정기적으로 계모임을 가져 지금도 그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97년부터 10년간 통장을 맡았던 정씨도 "그 당시에는 '내집 네집'이라는 개념이 없이 그저 아무 집이나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올 정도로 이웃간에 믿음과 정이 깊었다"며 "그 때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 삭막해 가끔 내가 살던 아파트를 지나갈 때 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맞장구를 쳤다.

황 조합장도 "지난해 아파트 동 호수 추첨을 할 때 예전에 같은 동에 살던 주민 2명이 다시 같은 동에 걸렸다고 너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특히 60대 이상의 나이드신 분들이 옛 추억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위쪽으로 순환도로가 생겨 버스도 다니고 있지만 그 때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수백미터 떨어진 한 곳 밖에 없어 교통이 많이 불편했다"며 "특히 경사가 가파라 무거운 짐이라도 들고 올라갈 때면 눈 앞이 캄캄했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동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일산아파트는 이제 과거의 '닭장 아파트' 이미지에서 탈피해 앞으로 동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재건축 추진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황 조합장은 "아파트를 지은 지 20년이 지난 시점인 2003년께 부터 재건축의 필요성을 느껴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도 하고 협조를 구했으나 처음에는 대부분 무관심할 뿐 더러 '굳이 할 필요 있느냐'식의 반응이어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황 조합장은 "그 해 입주민 찬반투표를 실시했는데 600명 중에서 290명이 찬성하고 250명이 반대해 사실상 투표에서는 이겼으나 필요 요건 인원수에 2~3명이 모자라 고민끝에 부결시켰다"며 "그 후 2년간 추진위 사무실을 문 닫고 지내다 2005년께 다시 재개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06년말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나서 시공사를 선정하려 시공업체들을 만났으나 업체들이 일산아파트에 대해 대부분 안 좋은 이미지 갖고 있었던 터라 수주를 기피했다"며 "특히 현재의 일산아파트를 건립했던 현대건설측에서 처음 제안시 외면했을때는 서운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3지구는 지난해 2월 대우건설이 롯데건설과의 2파전 끝에 수주를 따냈고, 이어 같은 해 11월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이 맞붙은 1지구는 예상을 깨고 대림산업이 수주에 성공해 현대왕국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 재건축 사업추진 현황

일산아파트는 건립한 지 20년이 지나면서 노후 현상으로 건물 균열과 상수도·오수 처리 등 각종 민원의 온상이 돼왔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2003년부터 1, 2, 3지구로 나눠 재건축사업에 착수했다.

각 지구별로 조합 설립 과정에서 다소 난항을 겪기도 했으나 지난 2006년 8월 3지구가 조합설립을 시작한 것을 필두로 1지구가 지난해 8월, 2지구가 마지막으로 지난해 11월 각각 완료되면서 시공사들이 선정되는 등 재건축 사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3지구가 지난달 초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가 늦어도 3월 말까지 완료하는 등 연말까지는 전체 모든 단지의 철거가 마무리 될 예정이다. 대신 이 자리에는 기존 3409가구에서 3686가구로, 층수는 지상 5층에서 지상 19~35층의 최신식 고층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